BLESS는 도쿄에 직영 매장이 없다. 파리의 데지레 하이스와 베를린의 이네스 카크가 함께 꾸려온 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히스토리는 BLESS 브랜드 페이지에 정리해뒀다. 이 글은 다른 걸 본다 — 직영 없이 도쿄에서 이 브랜드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지형이다.
브랜드가 공개한 스톡키스트 목록과 각 매장의 자체 정보를 대조해 확인한 도쿄 편집숍은 스물세 곳이다. 백화점 매장은 없다. 대신 규모는 제각각이다 — SUPER A MARKET은 TOMORROWLAND 그룹이, ESTNATION은 사자비리그가, 긴자의 Dover Street Market은 꼼데가르송이 운영하고, cliché처럼 점장 한 사람이 꾸리는 매장도 있다.
직영 0, 스물세 곳
BLESS 공식 스톡키스트 페이지(bless-service.de)의 EUROPE 블록에는 브랜드 자신의 매장 두 곳이 각각 나라 항목 맨 앞에 올라 있다 — 파리의 BLESS SHOP PARIS(14, rue Portefoin), 베를린의 BLESS HOME BERLIN(Oderbergerstrasse 60). 이 목록은 자사 리테일을 감추는 목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JAPAN 블록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쿄 주소 스물세 곳 중 “BLESS”라는 이름을 내건 항목은 단 하나도 없다 — 전부 다른 이름의 편집숍이다.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같은 목록 안에서 유럽엔 자기 이름을 걸고 아시아엔 걸지 않은 셈이라, 이 부재는 우연이 아니라 유효한 대조로 읽힌다.
그렇게 확인한 스물세 곳이 지금 시점에 확인되는 전부다.
오모테산도-진구마에, 여덟 곳이 모인 반경
스물세 곳 중 여덟 곳이 오모테산도-진구마에-미나미아오야마 반경 안에 있다.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매장이 도보로 오갈 수 있는 한 구역에 몰려 있는 셈이다.

SUPER A MARKET은 미나미아오야마의 TOMORROWLAND 계열 컨셉 스토어다. BLESS가 옷과 오브제 사이를 오가는 브랜드라는 점을 생각하면, 카테고리 경계를 허무는 이 매장의 편집 방식과 결이 맞아떨어진다.
같은 구역엔 ADDITION ADELAIDE도 있다. 1991년 미나미아오야마에서 시작한 편집숍 ADELAIDE가 2002년 진구마에에 연 자매점으로, BLESS는 BLESS 공식 스톡키스트와 ADDITION ADELAIDE 자체 브랜드 목록 양쪽에 모두 이름이 올라 있다.
이 반경엔 GR8도 있다. 구보 미츠히로가 2005년 라포레 하라주쿠에 연 스니커즈·액세서리 편집숍인데, 스트리트웨어·럭셔리 쪽 색이 강한 이 공간에도 BLESS 자리가 있다는 건 이 브랜드가 하나의 장르에 갇히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엔 1LDK AOYAMA도 있다. 나카메구로의 1LDK·SO NAKAMEGURO처럼, 1LDK 계열이 오모테산도에도 별도 지점을 두고, 세 매장이 나란히 BLESS를 취급하는 셈이다.
CAROL·CIBONE(GYRE)·APT335.·MANHOLE까지 더하면 이 구역만으로 여덟 곳이다. 매장 성격은 컨셉 스토어부터 갤러리형 편집숍까지 제각각이지만, 좁은 반경 안에서 이렇게 다른 결의 매장들이 같은 브랜드를 나눠 든다.
요요기·도미가야·시부야로 이어지는 네 곳
두 번째로 두꺼운 구역은 요요기하치만-도미가야-시부야 쪽이다. cliché·MARS·OUTDATED·GARDEN 네 곳이 여기 있다.
요요기하치만의 편집숍 cliché는 2022년 문을 연 곳으로, 디자이너 신 마쓰시마가 자신의 브랜드 CANTATE와 Stein·BLESS·STUDIO NICHOLSON을 한 공간에 섞어놓았다. 마쓰시마는 매거진 HOUYHNHNM과의 인터뷰(2022년 7월)에서 셀렉트숍을 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브랜드는 어쩔 수 없이 오르내림이 있고, 가라앉을 때 도와줄 셀렉트 브랜드를 갖고 있으면 여러 면에서 보완이 된다.” 자기 브랜드 하나로만 승부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를 곁에 두는 게 리스크를 나누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직영점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는데, 이건 BLESS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자기 브랜드 CANTATE의 유통 전략에 대한 일반론이다. 그럼에도 BLESS처럼 스스로 매장을 열지 않는 브랜드에게는, 이런 계산으로 매장을 꾸리는 편집숍이 유통의 거의 전부가 된다.
나카메구로, 숍과 호스텔 사이
나카메구로 쪽에는 1LDK 나카메구로 본점과 SO NAKAMEGURO, BOUTIQUE ROMANTIQUE 세 곳이 있다.


SO NAKAMEGURO는 1LDK 계열 디렉터 미요시 료가 2018년 연 숍앤호스텔로, 1LDK 나카메구로 본점과 겹치지 않는 별도 셀렉션을 표방한다.
1LDK 본점은 “일상 속의 비일상”을 내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다. 서로 다른 셀렉션을 내건 두 매장이 같은 운영사 아래서, 걸어서 몇 분 거리를 두고 나란히 BLESS를 취급하는 구도다.
그 밖의 여덟 곳
나머지는 도쿄 전역에 흩어져 있다. 긴자에는 Dover Street Market이, 롯폰기힐스에는 ESTNATION이, 다이칸야마 인근에는 Points de Suspension이 있다. 신주쿠 뉴우먼에는 SUPER A MARKET의 별도 지점이, 지유가오카에는 CARREFOUR가, 센다가야에는 GIGINA가, 세타가야 고마자와에는 SKOOL이, 마치다에는 KIRETTO가 있다. 성격을 미리 규정하기보다는, 각 매장 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옷걸이가 아니라 오브제부터
BLESS는 컬렉션마다 번호를 매긴다. 이 번호는 계속 이어져 2017년 시카고 건축비엔날레에서 공개한 60번째 컬렉션 ‘Lobby Conquerors’까지 왔고, 매 컬렉션은 20개에서 2000개 사이의 한정 수량으로만 나온다. 번호 안에 담기는 것도 옷이라는 틀을 자주 벗어난다 — 전선을 진주와 레이스로 감싼 N°26 케이블 주얼리, 짐을 들어주는 옷 형태의 N°14 쇼핑 서포트,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헤어브러시, 퍼 해먹, 가죽과 데님으로 지은 무릎길이 부트삭스까지. 시즌마다 형태가 달라지는 구조라 특정 품목의 재고나 가격을 여기서 못박진 않는다. 대신 이 브랜드를 처음 본다면, 매장에 들어서서 옷걸이가 아니라 번호가 매겨진 오브제부터 먼저 살펴보길 권한다. BLESS를 옷으로만 접근하면 이 브랜드가 정작 하려는 이야기의 절반을 놓친다.



이어갈 곳
오모테산도-진구마에 반경의 여덟 곳 모두를 하루 동선으로 묶을 수 있다. SUPER A MARKET·ADDITION ADELAIDE·CAROL·CIBONE·GR8·APT335.·MANHOLE·1LDK AOYAMA — 전부 도보로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지형이 증거다
BLESS는 파리와 베를린에 자기 매장을 연다. 그런데 도쿄에서는 확인된 스물세 곳 중 어디에도 자기 이름을 걸지 않는다. 자기 매장을 여는 브랜드가 도쿄에서만 남의 손을 빌리는 셈이다. 그래서 이 브랜드를 도쿄에서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누군가의 큐레이션을 통과한 경험이다. SUPER A MARKET에서는 컨셉 스토어의 병치 방식으로, cliché에서는 리스크를 나눠 갖는 계산을 가진 마쓰시마의 손을 거쳐, SO NAKAMEGURO에서는 숍과 호스텔이 뒤섞인 공간감 속에서. 같은 브랜드가 매장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건, BLESS가 애초에 하나의 정답을 두지 않는 브랜드라서다. 스물세 곳의 지형이 그 증거다.